어둠이 깔린 성당 옥상 위, 붉은 노을빛 아래 제르하르트의 실루엣이 고요히 서있었다. 팔뚝에 슬라이드되는 룬 인젝터가 은은한 빛을 발하며, 그 빛은 밤하늘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속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그 아이는 돌아올 수 없다."
성당 지하의 고대 제단에 루네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파문이 그녀를 둘러싸며 팔까지 번지는 붉은 문양이 불안하게 빛났다. 그녀의 표정은 혼란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이걸 멈출 수 없어. 나도 도무지 알 수 없는 힘이야…"
땅이 흔들리며 성당의 벽이 갑작스레 갈라졌고, 숨겨진 지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깊숙한 곳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 수정이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여성형의 희미한 실루엣이 갇혀 있는 듯했다. 루네는 그 모습에 마음이 묘하게 동요했다. "왜… 내가 닮은 듯해?"
그와 동시에 감시자 본부에서는 붉은 경보가 울렸고, 감시자 수장 아이네라의 실루엣이 커다란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두 번째 봉인의 조각이 깨어났다. 그녀가 감응했어. 곧 심연이 꿈틀댈 것이다." 조직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격리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합니까?” 아이네라는 냉정하게 말했다. “감정 박탈 7단계, 자아 분리 유도.”
수정에 손을 뻗으려던 루네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수정 속에서 뻗어나오는 검은 손이 마치 자신을 붙잡으려는 듯 위협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속마음이 말렸다. “닿으면 안 돼, 하지만 멀어질 수도 없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너도 갇힌 걸까?”
누구인지 모를 수정 속 존재가 깊은 울림으로 말했다. "나는 두 번째 봉인의 한 조각이다. 네가 나를 찾았다는 건 심연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지." 그와 동시에 루네의 손목 문양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경악하며 뒷걸음질치자 문양에서 맥박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성당 밖, 도심은 이상한 공명 진동에 흔들렸고 가로등이 깜박였다. 시민들은 불안에 휩싸인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이게 뭐지? 지진인가… 아니, 뭔가 이상해." 그때 검은 날개 모양의 룬 장치가 도시 외곽에 내려앉았다. 제르하르트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각성의 시간이 다가왔다. 잔상 관문을 가동한다."
루네는 도망치려다 стер벽에 투영된 눈 모양 룬과 그 안의 감시자의 얼굴을 발견했다. 벽에서 울려 퍼지는 낮고 냉혹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경고했다. “너는 관찰당하고 있다. 선택받았다는 건 자유를 잃는 길이다.” 격분한 루네가 절규하듯 외쳤다. “제발 그만! 내가 누군지 모르면서…”
벽에 부딪힌 룬이 산산조각 나면서 ‘감시자의 눈’ 로고가 드러났다. 동시에 제르하르트는 옥상에서 그녀를 내리며 낙담한 듯 말했다. "너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거냐, 루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금지된 영역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루네. 그곳은 그녀가 자아와 무의식을 가르는 경계, 진입해서는 안 될 장소였지만, 이미 깊은 곳까지 들어서고 말았다. 그녀를 향한 감시와 통제는 점점 짙어지고, 봉인의 힘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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